이태리제 명품들중에 가죽이 들어간 용품들...
가격 비싸게 주고 살만하더라
오늘 세계테마기행 모로코편을 보는데 모로코에서 이태리에 납품되는 대부분의 가죽이 가공되더군
아프리카 전역에서 모은 가죽들을 엄청난 재래식(수천년동안 그대로 이어져온) 방식으로 가공하는데...
가축의 털을 떼어내기위해 무슨 천연염료에 담갔다가 석회수를 뿌리고 밤낮으로 물레방아(?)에 넣어 돌린뒤 칼로 긁어내고 다시 하루종일 염료에 담궜다,뺐다를 반복했다가 다 걷어서 한달동안 말린다. 그리고 그 말린 가죽을 다시 칼로 다듬고..
엄청난 노력이 들어가더라.
근데 그 노동력이 대한 댓가는 비례하지 않더군(당연하지만)
만약 페라가모 가죽구두가 100만원이라 치면 내 생각엔 생산/1차가공자 50만 유통,2차가공자 50만 비율이 되어야 할터인데....
현실의 비율은 10:90.
하루종일 염료가공하면서 살아온 경력40년차 할아버지의 월 일당은 14000원.
그에반해 이태리 명품장인들은 최소한 적어도 일당 140만원은 될터인데.
어휴.. 좋은곳에서 태어나고 볼일이다.
난 그런점에선 한국에게 감사해
※WCG종목중에 프로젝트고담레이싱4가 있었네...
ㅅㅂ나도 다음달월급으로 엑박질러서 국가대표함 나가볼까 ㄲㄲ
이지랄병을 하고앉아있습니다..
100만년만에 세이클럽에 접속했다. 쪽지함을 열어보니...
새로 도착한 쪽지는 1년에 한통씩, 내 생일을 축하한다는 세이클럽 운영자의 축하메시지뿐.
보관함을 열어보니 중학교때의 친구들과 주고받은 유치한 말들과 실없는 용건들.
100명이 넘는 친구중 접속한 친구도 0명.
가끔씩 지금은 누군지도 모르는, 아마 피망맞고를 하기 위해서인듯한 사람 한명만 들락날락.
14살, 인터넷이 점차 대중화되기 시작했을때 가입해서 몇년동안.. 처음부터 아는사람은 한명도 없었지만 서로 접속해서 채팅으로 공동의 관심사에 대해 이야기하고 웃고 떠들고 창작하고(유치했지만..) 온/오프라인 가리지 않고 서로 연락하며 지내던 커뮤니티는 아무도 접속하지 않은상태로 3~4년을 방치되고 있었다. 그당시엔 50여명의 회원들의 매일매일 쓴 글로 페이지가 도배되어서 지면이 모자라 서브로 별도의 게시판까지 생성되어있었는데.. 내가 쓴글들 읽어보니 참으로 낯이 뜨겁다 ^^;;
10년이 흘렀으니 다들 나이먹고 자신의 생활과 일을 찾아서 열심히 살아가고 있겠지. 그때 가장 나이가 많던 형이 21살이었으니 지금은 서른이 넘으신 장년이시겠군. 16살의 록밴드 보컬 소녀도 있었는데 지금은 뭐하려나 하하...
사람이 나이들어서 유년의 추억이 어린곳으로 찾아가면 그 바뀐모습이나 황량한 모습에 이질감과 쓸쓸함을 느끼는 대목이 영화나 소설에서 많이 나온다. 비록 그런 개념과는 조금 다를지 모르지만.. 온라인상의 공간이나마 그런 추억거리로 남아있고 그립다.
주말을 맞이하야 다음주를 견디어낼수 있는 좋은 휴식이 필요한 때인데...
수중에 돈도 한푼도 없고 간만에 아무 약속도 없는 조용한 날.
그래서 그냥 혼자 아무도 없는 집에서 음악듣고, 책읽고, 밀린 미국드라마보면서 보냈다.
하늘도 어둑어둑 비가 쏟아질것같은 날씨. 따끈한 전기장판키고 얼마전 구입한 전기주전자로
이모가 여행갔다오면서 사다주신 아라비카커피나 먹으면서 오디오로 음악이나 듣고있으니 나른-하고 여유롭고...
간만에 편하게 쉬면서(아무것도 안하면서) 하루를 잘보냈다.
별 일도 없으면서 왜 그렇게 바쁘게 살았는지... 정말 오랜만에 하루 24시간이 길게 느껴지는 하루였다.
저녁엔 땅콩안주로 맥주한캔하면서 축구경기나 보면 멋진 하루마무리가 되겠군.
